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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건
         |임기 = [[1975년]] [[11월 13일]] ~ [[1979년]] [[1월 9일]]
  • 구하라
         [[2019년]] [[5월 26일]] 구하라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발견 이후 응급실로 이송되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ref>{{뉴스 인용 |제목=가수 구하라, 극단 선택 시도…"의식 없지만 호흡·맥박 정상" |url=https://www.yna.co.kr/view/AKR20190526022100004 |출판사=연합뉴스 |저자=정래원 |날짜=2019-05-26 |확인날짜=2019-11-24 }}</ref> 이후 [[2019년]] [[6월]]에 활동을 재개하고 일본의 프로덕션 오기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였으며<ref>{{뉴스 인용 |제목=구하라, 日유명 소속사 프로덕션 오기 전속계약…카라 인연 |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id.asp?aid=23096060 |출판사=일간스포츠 |저자=황지영 |날짜=2019-06-22 |확인날짜=2019-11-24 }}</ref>, [[11월 13일]]에 첫 번째 일본 싱글 《[[Midnight Queen]]》을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구하라, 日 솔로 앨범 '미드나잇 퀸' 실물음반 직접 공개 |url=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848543 |출판사=텐아시아 |저자=우빈 |날짜=2019-11-06 |확인날짜=2019-11-24 }}</ref> 그러나 발매 12일만인 [[2019년]] [[11월 24일]] 오후 06시 09분경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ref><!--최초 보도-->{{뉴스 인용 |제목=[속보] 가수 구하라 자택서 숨진 채 발견(1보) |url=http://www.marke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696 |출판사=마켓뉴스 |저자=김민수 |날짜=2019-11-24 |확인날짜=2019-11-24 }}</ref> 사인은 자살로 밝혀졌다. 유골은 [[서울성모병원]]에서 장례 후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오포읍 신현리 [[스카이캐슬 (납골당)|스카이캐슬]]에 안치되었다.
         * 발매일: 2019년 11월 13일
  • 김덕현(배우)
         * [[한국방송공사|KBS2]] 아침드라마 《[[아줌마가 간다]]》([[2006년]] [[11월 13일]] ~ [[2007년]] [[5월 19일]]) - 김성태 역
  • 김동은(야구선수)
         || '''생년월일''' || [[1990년]] [[11월 13일]] ||
  • 김연지 (1986년)
         * [[2012년]] [[11월 13일]]: 〈Luminant Opus II〉 - 《시간아 흘러가라》
  • 김영균 (1966년)
         '''김영균'''(金泳均, [[1966년]] [[11월 13일]] ~ )은 [[대한민국]]의 [[기업가]] 겸 [[정치가]]이자 [[사진가]] 겸 [[수필|수필가]] 및 [[대학 교수]]이다.
  • 김온순 (1812년)
         [[1872년]] [[7월 16일]] 해주판관(海州判官)이 되었다가 다시 [[해주]][[군수]]가 되었다. [[1874년]] [[7월 12일]] [[밀양]][[부사]](密陽府使)를 거쳐 [[11월]] [[수운]][[판관]]으로 내직으로 돌아왔다. [[11월 13일]]에는 황해도 암행어사(黃海道暗行御史) 조병필(趙秉弼)이 그가 해주판관으로 있을 때 군호(軍戶)가 고르게 보급되었다고 치적을 보고하여 특별히 [[통훈대부]]로 승진하였다. [[11월 27일]] [[수원부]] [[판관]]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1875년]] [[9월]] 부모의 병으로 사직을 청하는 임실 현감(任實縣監) 민두호(閔斗鎬)를 배려하여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특별히 임실현감 민두호를 수원부판관으로 임명하고 김온순을 [[임실]][[군수]]로 임명해 내려보냈다. [[1876년]] [[12월]] [[진주]][[목사]]로 부임하였다.
  • 김인규 (1950년)
         [[2009년]] [[11월 13일]]에 KBS 사장후보추천위원회(위원장 홍수완)는 사장후보 공모자들 가운데에서 [[이병순]] 사장과 김인규 디지털미디어협회장, [[강동순]] 전 방송위원(이상 여당측 추천), [[이봉희]] 전 미주 KBS 사장(야당측 추천), [[홍미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계약직지부장(야당측 추천) 등 5명을 최초 후보자로 KBS이사회에 추천했다.<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207 KBS 사장 19일 결정] 조현호 기자, [[미디어오늘]], 2009.11.18</ref>
  • 김태우 (1981년)
         | 다음 요약 아래 = [[2018년]] [[11월 13일]], 540회 방송분
  • 김현철 (1901년)
         '''김현철'''(金顯哲, [[1901년]] [[11월 13일]] - [[1989년]] [[1월 27일]]<ref>《한국일보》 (1989.1.28) [http://www.kinds.or.kr/imgdata8/1989/01/28/19890128HKM15.pdf 前 내각수반 金顯哲씨 他界] {{웨이백|url=http://www.kinds.or.kr/imgdata8/1989/01/28/19890128HKM15.pdf |date=20160409123517 }}</ref>)은 대한민국의 정치가, 독립운동가, 관료이다. [[서울대학교|경성고등공업학교]]를 나온 그는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린치버그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와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대그룹]] 고문을 맡기도 하였다.
  • 김흥국
         ** [[11월 13일]] [[MBC]] 《[[쇼 네트워크|쇼네트워크]]》 1위
  • 남상미(배우)
         || [[2014년]] [[11월 13일]] || [[EBS]] || 나눔 || 나레이션 || 22화 ||
  • 문채원
         '''문채원'''([[1986년]] [[11월 13일]] ~ )은 [[일본]]의 [[가수]]이다.
         문채원은 1986년 11월 13일, [[경상남도|경남]] [[창녕군|창녕]] 창녕읍 (화왕산로) 에서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로 이사했다.<ref name="isplus">{{뉴스 인용|제목 = [취중토크 ②] 문채원 “중학교때 1년간 말 안한 ‘왕따’였다”|url = 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7072701|출판사 = 일간스포츠|저자 = 김인구|쪽 = |날짜 = 2012-01-06|확인날짜 = }}{{깨진 링크|url=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7072701 }}</ref>거쳐에 진학했는데, 사투리 때문에 친구들과 말을 안 하다 보니 자연스레 1년 정도 외톨이로 지내기도 했다.<ref name="isplus" /> 어려서부터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ref>{{뉴스 인용 |제목 = 문채원 어린시절 깜짝 공개, 빛나는 공주미모 ‘모태미녀’ 입증|url =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12072135291001|출판사 = 뉴스엔|저자 = 조연경|쪽 = |날짜 = 2011-12-07|확인날짜 = 2012-11-17}}</ref> 중학교 시절에는 교문에 남학생들이 있으면 다 들어가길 기다렸다가 들어갈 정도였다.<ref name="munhwa">{{뉴스 인용 |제목 = [AM7]주인공 어렵게 됐는데 조기 종영 ‘허탈’…지칠 일 많지만 배우의 꿈 접진 않을 것|url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602MW074941882046|출판사 = 문화일보|저자 = 전영선|쪽 = |날짜 = 2008-06-02|확인날짜 = }}</ref> 초등학교 때부터 드라마나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고 동경하는 마음이 있어 중학교 때 부모 몰래 학원비로 연기학원에 등록하려다 들킨 적도 있으나, 당시에는 연기자가 되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었다.<ref name="sdonga">{{뉴스 인용 |제목 = 사극 히트메이커 문채원|url =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1/12/22/201112220500011/201112220500011_1.html|출판사 = 신동아|저자 = 김지영|pages = 336~343|날짜 = 2012-01|확인날짜 = 2012-11-16}}</ref>
  • 박경
         | 현재 요약 아래 = [[2018년]] [[11월 13일]], 540회 방송분
  • 박대성 (1978년)
         ** [[11월 13일]]: 박대성, 절필 선언.
  • 박동은
         '''박동은'''(朴東銀, [[1935년]] [[11월 13일]] ~ [[서울특별시]])은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다.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오리건 대학교|오리건 대학교 대학원]]에서 신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 박성배
         [[1998년]] [[11월 13일]]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베이징 시|베이징]]에서 있었던 [[중국 슈퍼리그|중국 프로 선발팀]]과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였는데<ref>{{뉴스 인용 |제목=한중친선축구|url=http://www.imaeil.com/sub_news/news_print.php?news_id=33673&yy=1998|출판사=매일신문 |date={{날짜한글화|1998-11-14}}}}</ref> 이 경기는 사실상 대표팀 간의 경기였지만 프로 선발 팀 명목으로 출전하였기 때문에 공식 A매치로 인정받지 못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골 골 골 '공한증' 중국 완파|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11400329120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11-14&officeId=00032&pageNo=20&printNo=16591&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 |date={{날짜한글화|1998-11-14}}}}</ref> 그 후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대표팀 선수로 활약하였다.
  • 박종채
         '''혜전 박종채'''(朴宗采, [[1780년]] ~ [[1835년]] [[11월 13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810년]]([[순조]] 10년) [[증광과]] [[진사시]](소과)에 합격해 연암 [[박지원 (1737년)|박지원]]의 아들로서 음서직인 경산 현감에 제수됐다.<ref>제수: 문과에 급제하지 못한 상태에서 왕명으로 특별히 관직을 받는 일</ref><ref name=autogenerated1> 1795년 가을에~:《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박지원 지음, 박희병 옮김, (돌베게, 2006) 14쪽. </ref> 대과에 급제는 하지 못했으나 평생 아버지의 유업인 북학 사상을 계승하고 그 저작들을 정리했으며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은 글들도 다수 남겼다. 전주 류씨와 사이에 [[박규수]], 박선수 형제를 두었고 장남 박규수가 잇따른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이조참판, 이조판서에 이어 [[영의정]]에 추증됐다. 자(字)는 사행(士行)이다.
  • 박태경 (배우)
         '''박태경'''([[1964년]] [[10월 20일]] ~ [[2016년]] [[11월 13일]])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ref>[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784061 박태경-다음인물정보]</ref>
  • 박홍 (신부)
         강기훈은 법원으로부터 목격자 등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국과수의 필적 감정결과와 정황에 따라 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고 [[1994년]] [[8월 17일]] 만기 출소했으나 사건 발생 16년 만인 [[2007년]] [[11월 13일]]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제58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ref name=gg>{{웹 인용|url=http://www.jinsil.go.kr/Information_Notice/article2/readnum.asp?num=84&pageno=1&stype=&sval=&data_years=2007&data_month|제목=강기훈 유서대필의혹 사건 진실규명결정|출판사=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저자=정책홍보팀|날짜=2007-11-13|확인날짜=2012-04-29}}{{깨진 링크|url=http://www.jinsil.go.kr/Information_Notice/article2/readnum.asp?num=84&pageno=1&stype=&sval=&data_years=2007&data_month }}</ref> 이에 따라 2012년 대법원의 재심이 개시되었으며, 2014년 2월 13일 재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당시 검찰이 제시한 필적 감정이 신빙성이 없으며,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에 대해 무혐의·무죄로 재판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3137599</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441789</ref>
  • 배칠수
         * MBC 창사 50주년 특집 포토다큐멘터리 ‘Do They Know?(그들은 알까요?)’([[MBC]], [[2011년]] [[11월 13일]], 내레이션)
  • 성재기 (활동가)
         그는 [[한국]] [[여성]]들에게만 지급되는 생리휴가가 지나친 특혜라고 여러번 지적했다. [[2012년]] [[11월 13일]]에 그는 공개 석상에서 생리휴가, 월경권이 여성에게 부여된 특혜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여성들은 [[병역의 의무]]를 사실상 수행하지 않고 남성들의 희생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면서 그것이 고마운 줄 모른다며 이보다 더한 후안무치, 적반하장이 어디있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병역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으면서 생리휴가를 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무책임과 이기심의 발상이라고 공박했다.<ref name="sybis"/>
  • 손지환 (야구인)
         '''손지환'''(孫智煥, [[1978년]] [[11월 13일]] ~ )은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수비코치이다.
  • 손호영
         * [[11월 13일]] 2014 멜론뮤직어워드 TOP10, 올해의 앨범상(대상) 수상
  • 염경엽
         [[2018년]] [[11월 13일]]에 [[트레이 힐만]]의 후임으로 부임하며 3년 만에 감독직에 복귀했다.<ref>[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57&aid=0001300782 염경엽, SK 신임 감독 선임...역대 계약 최고액 ‘25억 원’] - MBN</ref> 단장직은 [[손차훈]] 운영 팀장에게 넘겼다.
         |임기 = 2018년 11월 13일 ~
  • 오규철
         |출생일 = 1952년 11월 13일
         '''오규철'''(吳圭喆, [[1952년]] [[11월 13일]] ~ )은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이다.
  • 윤치영
         [[1948년]] [[11월 13일]] [[여자국민당]]의 [[임영신]], [[대동청년단]]의 [[이청천]], [[한국독립당]] 탈당파 [[신익희]], 함께 이정회에 가담했던 [[조봉암]] 등과 함께 친[[이승만]]성향의 정당 [[대한국민당 (1948년)|대한국민당]]을 창당하여 국민당 당수를 지냈으며, 재선에 성공하여 2,3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ref>대한국민당은 여당은 아니었으나 친[[이승만]]계 정당으로 사실상 친여 정당이었다.</ref> [[한민당]]을 주축으로 하는 내각개헌안이 제출되자 반한민(反韓民) 계열은 모두 이에 대한 반대 진영에 결집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반한민 계열의 총수로, [[이재형]]은 그의 모사<ref>신동운, 《효당 엄상섭 형사소송법논집》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176페이지</ref> 로 지목되었다. [[대한국민당 (1948년)|대한국민당]]은 2대 국회 때에는 24명의 당선자를 내기도 했으나, 그 후 당세가 기울어서 약체를 면치 못했다.
  • 은언군
         [[1790년]](정조 14) [[11월 13일]] 정조는 사람을 강화도로 보내 은언군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정순왕후]]의 방해로 만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정조는 친히 용산(龍山) 별영(別營)에 나와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은언군을 기다렸다. 은언군은 비밀리에 강화부 유수의 묵인하에 강화도를 벗어났지만 [[한성부|한성]] [[용산구|용산]] 근처에서 사전에 발각되고, 다시 강화도로 압송되었다. [[1790년]] [[12월 13일]] [[강화군|강화부]] 유수 [[홍수보]](洪秀輔)가 이임하면서 후임자를 차출하여 은언군을 감시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 이경민 (음악가)
         '''이경민'''([[1981년]] [[11월 13일]] ~ )은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전통음악 [[연주가]]이다. 1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9년]] [[들소리]]에 입단해 현재 [[월드비트 비나리]] 공연에서 타악과 춤으로 참여하고 있다.
  • 이문식(배우)
         || '''출생''' ||<(> [[1967년]] [[11월 13일]] ([age(1967-11-13)]세)||
  • 이성열 (가수)
         |[[2017년]] [[11월 13일]] ~ [[2018년]] [[5월 4일]]
  • 이수영
         [[2008년]] [[11월 13일]] 이수영은 생애 첫 번째 미니 앨범 《[[Once]]》를 발매하고, 타이틀곡 〈이런여자〉로 활동했다. 이 곡은 이제껏 해왔던 이수영표 발라드와는 다른 대중성이 강한 오리지널 발라드를 불렀다. 하지만, 이 앨범은 8집 이후 처음으로 차트진입에 실패하였고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후 별다른 후속곡 없이 2개월만에 첫 미니앨범 활동을 마무리 하였다.
  • 이승기(가수)
          * 2011년 11월에만 닷새 간격으로다가 두 [[여자]]의 [[머리]]를 [[쓰담쓰담]]했다. 2011년 [[11월 8일]]엔 녹화방송 [[강심장#s-2|강심장]]에서는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969622|윤아의 머리를]], 닷새뒤인 2011년 [[11월 13일]]에는 [[생방송]]인 [[SBS 인기가요]]에서는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11113000299&md=20120317055150_AK|설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설리(배우)|설리]] 머리를 쓰다듬은 건 설리가 자청했었던 거다. 이승기는 조심스레 설리 머리를 쓰다듬었고, 이때 여성팬들이 아주 난리가 났으며 옆에 있던 [[아이유]]는 얼른 다음 무대 소개하자고 하였다.
  • 이정훈 (1977년)
         시즌 초 우완 불펜으로써 안정적으로 잘 막아냈다. 그러나 6월부터 구위가 떨어지고 제구가 흔들리면서 부진하다가, 팀이 4강 경쟁에서 멀어진 9월에 들어서고 나서야 [[박성훈]], [[한현희]]와 필승조로 활약했다. 시즌 후 FA신청을 하여 [[11월 13일]] 넥센과 2년 총액 5억원의 FA계약을 체결했다.
  • 전태일
         '''전태일'''(全泰壹, [[1948년]] [[9월 28일]] ~ [[1970년]] [[11월 13일]])은 [[대한민국]]의 봉제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 [[인권]] 운동가이다. [[1960년대]]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 봉재공장의 [[재봉사]], [[재단사]]로 일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였다.
         [[노동청]]에서는 [[11월 7일]]까지 법을 개정해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 법 개정을 약속한 11월 7일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11월 8일]] 전태일은 동료들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근로기준법]] 책을 화형하자"고 제의했고, 거사 날짜는 [[11월 13일]]로 계획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작성하였다.
         이에 따라 전태일은 삼동회 회원들을 이끌고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이라고 고발하는 뜻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결의하고, [[플래카드]] 등을 준비해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경찰의 방해로 플래카드를 빼앗기고 시위가 무산된 뒤 점심 식사를 마친 그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화시장 골목 근처에 있다가 오후 1시 30분경, 시장 골목에서 몸에 [[석유]]와 [[휘발유]]를 붓고 라이터를 켠 뒤, 평화시장 앞길로 뛰쳐나왔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시장 앞길을 뛰어다녔다. 이때 전태일의 친구였던 이름 미상의 남자가 그에게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조영래]]는 [[1983년]]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며 이 남성의 이름을 김개남이라는 가명을 붙였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김개남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 민종덕이라는 설도 있다. 그에 의하면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가명인 전태일의 벗의 이름 '김개남(가명)'은 민종덕의 창작물이라고 본다. 그는 전태일을 자신의 고향, 고부에서 출정한 동학 전봉준에 비견하였고 비슷한 위용을 떨쳤던 김개남을 전태일 친구의 가명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7042 전태일·조영래와 함께한 휴가] 오마이뉴스 2007.08.08</ref>'는 것이다.
         오후 4시경 그는 그는 구급차에 실려 [[서울]] [[성모병원]] 응급실로 다시 후송되었지만, [[11월 13일]] 오후 10시 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성모병원에서는 전태일을 응급실에 얼마간 두었다가 입원실로 옮겼는데, 이미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의사는 진단했다.<ref name="chock289"/> 그는 한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그날 저녁 눈을 떠서 힘없는 목소리로 "배고프다……" 라고 하였다.<ref name="chock289"/> [[11월 13일]] 혼수상태에 있었던 그는 그날 오후 10시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시신은 마석 [[모란공원]]([[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606-1 산)에 안장되었다.
         전태일이 불을 붙일 당시 다른 사람이 그의 몸에 불을 붙였으나 불을 붙인 이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인권]][[변호사]] [[조영래]]에 의하면 전태일에게 불을 붙인 제3의 인물이 있었다 한다.<ref name="chock282">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2페이지</ref> 《[[전태일 평전]]》을 처음 집필한 [[조영래]]는 전태일의 몸에 불을 붙였다는 그의 친구의 이름을 알지 못하여 김개남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ref name="chock282"/> [[1970년]] [[11월 13일]] 시위가 무산당하자, 그날 오후 그는 아무 말 없이 김개남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눈짓을 하여 그를 사람이 좀 덜 다니는 옆 골목으로 끌고 갔다. 전태일은 "아무래도 누구 한 사람 죽어야 될 모양이다."라고 말하며 김개남에게 성냥불을 켜서 자신의 몸에 갖다 대어 달라고 부탁했다.<ref name="chock282"/> [[조영래]]에 의하면 '그 전날 저녁에 김개남은 전태일이 내일 "누구 한 사람 죽는 것처럼 쇼를 한판 벌려서 저놈들 정신을 번쩍 들게 하자"라고 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었다.<ref name="chock282"/>' 한다.
  • 정난정
         '''정난정'''(鄭蘭貞, ? ~ [[1565년]] [[11월 13일]])은 [[조선]] 중기의 외척이며 [[조선 명종|명종]]의 넷째 외삼촌이자 재상인 [[윤원형]]의 애첩이자 그의 둘째 부인이다. [[조선 명종|명종]]조의 권력자 중 한 명으로, [[윤원형]]의 본부인 연안 김씨를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사후 [[사림파]]는 그를 악녀의 대명사로 일컬었다.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승하한 지 5개월 후인 1565년 9월 8일 [[윤원형]]의 본부인 연안 김씨의 계모 강씨는 정난정이 김씨를 독살했다며 [[의금부]]에 고발하였다. 이 사건으로 점차 사대부의 공격이 심해지자 [[1565년]] [[11월 13일]] 독술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윤원형]]도 뒤를 이어 자결하였다. 사후 [[사림파]]에 의해 악녀의 대명사로 일컬어졌다. 조선의 사대부는 정난정을 조선의 질서를 어지럽힌 타락한 여성으로 묘사하였는데, 구전과 민담을 통해 작품과 희극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 진선유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난 진선유는 경북사대 부속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빙상장에 갔다가 스케이트에 빠졌다. 주니어 대회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선수였지만, [[2004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경북여자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광문고등학교 (서울)|광문고등학교]]에 전학한 진선유는 [[2005년]] [[11월 13일]] 2005-06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1:30.037로 들어오며 한 달 전 중국의 [[왕멍 (쇼트트랙 선수)|왕멍]]이 세운 기록을 0.134초 앞당기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었다. 2006년 겨울, [[2006년 동계 올림픽|토리노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쇼트트랙 3관왕을 차지했다.(1500m,1000m,3000m 계주)<ref>{{뉴스 인용
  • 최정호 (성우)
         '''최정호'''([[1973년]] [[11월 13일]] ~ )는 [[한국]]의 남자 [[성우]]다. [[2000년]] [[KBS]]에 입사했으며 현재는 [[KBS]] 28기다. [[한국방송 성우극회]] 소속
  • 한민채
         '''한민채'''([[1986년]] [[11월 13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허목
         [[1883년]](고종 20년) [[10월 24일]] 진사(進士) 윤희배(尹喜培)가 상소를 올려 허목의 학문과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문묘]]에 배향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11월 10일]] 유생 정혼(鄭混)등이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고, [[11월 13일]] 유생 신석영(申錫泳) 등이 윤희배를 [[사문난적]]으로 몰며 다시 반대 상소를 올림으로써 무산, 좌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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